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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29 한국경제신문 집단 행동론의 개척자 맨슈어 올슨 집단행동 연구분야를 새롭게 개척한 공로로 유력한 노벨경제학상 수상후보에 올랐지만 끝내 수상하지 못하고 일찍 세상을 떠난 미국 경제학자 맨슈어 올슨(Mancur Olson). 노르웨이 출신 이민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집단행동 논리 연구로 경제학에 입문했다. 정치와 경제를 이해하고, 번영의 근본 원인을 파악하려면 이익집단의 연구가 필수적이라고 믿었던 듯하다. 집단행동 논리의 핵심은 이렇다. 경쟁 없이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인간의 보편적 심리다. 공급자들이 담합해 경쟁자의 시장 진입을 막고 가격을 올려 소비자를 희생시켜서 이익을 챙긴다. 이익집단은 로비를 통해 정부를 압박, 각종 특권을 얻어낸다. 특권이란 경쟁으로부터 집단구성원들을 보호하는 면허제, 인허가제, 관세, 비관세, 시장규제들이다. 작은 그룹은 뭉치기가 쉽고 이해상관도도 높아 그룹이기심을 관철하기도 용이하다. 그러나 소비자, 납세자, 노인 등의 그룹은 규모가 커 뭉치기 어렵고 그래서 조직된 이익집단에 의해 착취당한다는 게 올슨의 설명이다. 이익집단은 재화를 생산해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조직이 미약한 그룹들을 희생시켜 이익을 챙기는 ‘분배연합’이라는 그의 개탄도 주목할 만하다. 올슨은 이런 논리로 지대추구 사회의 등장을 설명한다. 지대추구란 생산적인 경쟁 대신 국가의 보호를 받아 힘들이지 않고 돈벌이 하는 행동이다. 주목할 것은 집단행동의 논리가 경제번영에 미치는 영향이다. 분배연합의 목적은 구성원들을 경쟁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기에 그들의 혁신능력과 생산성 하락은 필연적이다. 분배연합이 득세하는 경제는 변화하는 환경에 대응할 능력이 둔화되고 그 결과는 경제의 ‘동맥경화’라는 것이 올슨의 설명이다. 올슨은 그룹이기심으로 무장된 이익집단은 사회전체에 피해를 주는 무리로 경제성장의 중대한 적(敵)이라고 지적한다. 올슨은 국가가 생산성을 높이고 번영을 이루기 위해선 정치와 경제가 이익단체의 압력으로부터 벗어나 자유경쟁을 통한 생산적 이윤추구를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집단행동 논리를 기초로 한 올슨의 역사해석도 주목을 끈다. 세계대전의 참패에도 독일과 일본은 연평균 8%의 고성장을 이어간 반면 전쟁에서 승리했던 영국과 미국은 연평균 2~3%의 낮은 성장을 기록했다. 회생 가능성이 없어 보이던 패전국들이 경이적인 성과를 이룬 배경엔 경제성장을 억제하는 분배연합들이 패전과 함께 완전히 붕괴된 것이 요인이 됐다. 이에 반해 승전국들은 사회가 비교적 안정적이었기 때문에 분배연합이 득세해 효율적인 경제성장을 어렵게 만들었다는 게 올슨의 해석이다. 올슨의 그런 역사해석에는 그만의 독특한 이론적 인식이 깔려 있다. 혁명 전쟁 파국 등과 같이 안정된 사회를 파괴하는 요인들은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분배연합을 해체시키고 결과적으로 경제적 활력소로 작용하지만 그런 위기가 없는 안정된 사회는 분배연합의 득세로 큰 정부를 불러와 경제를 둔화시킨다는 것이다. 올슨은 이익집단의 논리로 옛 소련의 흥망성쇠도 설명한다. 스탈린의 계획경제가 처음에 성공한 것은 혁명과 함께 강력한 철권통치로 분배연합의 특권층(노멘클라투라)이 득세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국유산업에서 번성한 귀족층이 정부관료와 담합해 최고지도부의 권력과 권위를 무너뜨리고 이것이 결국 공산당체제의 붕괴로 이어졌다고 말한다. 체제 붕괴 이후 러시아의 체제 전환이 어려웠던 점도 그런 분배연합의 존속 때문이라고 올슨은 설명한다. 이와 달리 중국이 개혁에 성공한 것은 기득권 세력인 분배연합이 문화대혁명 기간 중 근절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소련 계획경제의 흥망에 대한 올슨의 해석은 분배연합이 창궐하지 않았더라면 소련 경제는 성공할 수도 있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는데, 이는 시장경제가 ‘번영의 길’이라는 올슨 자신의 주장과 상충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계획경제는 사유재산이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가격이 없고 그래서 어디에 얼마나 투자할 것인가와 같은 경제계산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노멘클라투라가 번식하지 않았다고 해도 소련경제는 무너졌을 것이라는 게 오스트리아학파의 인식이다. 올슨은 번영을 위해 독재정부보다 민주주의가 바람직하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그는 홍콩이나 싱가포르, 중국 등이 보여주는 것처럼 경제자유를 중시하는 독재라면 번영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은 간과한 듯하다. 더구나 올슨이 지적했듯이 민주주의 체제 아래에서 이익집단이 판을 칠 경우 경제적 번영에 미치는 치명적인 악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올슨은 집단행동 결정에서 경제적 이해관계만을 중시하고 이념과 신념 등은 무시해 1989년 동유럽 공산체제에 대한 대규모 시위를 설명하기 어렵다는 비판도 있다. 이에 반해 케인스와 하이에크는 사회 변동의 추진력은 이념이며 그래서 이념이 중요하다고 진단했다. 올슨의 사상은 비판의 여지를 남기긴 했지만 그는 어느 누구도 다루지 않았던 집단행동 이론을 개척해 이익집단의 본질과 문제점을 꿰뚫어 보고 지속적인 경제번영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명쾌하게 설명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 이익집단 견제 제도 주장한 하이에크에 영향 끼쳐 올슨 사상의 힘 올슨의 사상은 번영을 보장하는 것은 재산권을 기반으로 하는 시장경제라는 것, 그러나 그 기반을 해치고 성장을 가로막는 것이 이익집단이라는 것, 그리고 재산권을 확립해 시장을 확장하는 정치제도는 민주주의라는 것이다. 번영의 지름길은 자본, 자원, 인구가 아니라 시장경제임을 강조하고 이익단체가 번영의 적이라고 개탄하는 올슨의 사상은 매우 소중하다. 일본 미국 등 오늘날 선진국들의 경기침체도 기득권 수호의 그룹이기주의에서 나온, 올슨의 제도적 동맥경화증 탓이라는 목소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부 없이는 재산권의 확립도, 경제번영도 가능하지 않다는 올슨의 주장도 흥미를 끈다. 올슨의 사상은 ‘다원주의’ 이론의 결함을 밝혀냈다. 그 이론에 따르면 공동의 이해관계가 있으면 사람들은 자동적으로 집단을 조직하고, 집단들은 서로 대칭적이기 때문에 그들의 경쟁은 사회 전체에 보편적 이익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규모가 클수록 뭉치기가 어렵다는 논리로 그 대칭성을 부인하고 있다. 공동의 계급이익을 가진 노동자는 모두 혁명에 가담한다는 마르크스의 계급이론도 잘못이라는 것이 올슨의 생각이다. 그 이론은 혁명에 기여하지 않고도 다른 사람들의 노력으로 달성된 결과를 향유하는 무임승차 행동의 가능성을 간과했다는 것이 올슨의 비판이다. 올슨의 사상은 이익집단의 힘이 불평등하기 때문에 정부가 취약한 집단의 대항력을 키워야 한다는 케네스 갤브레이스 사상도 잘못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올슨의 사상이 탁월함을 인정한 인물은 누구보다도 하이에크다. 그는 현대사회의 진정한 착취자는 그룹 충성심으로부터 권력을 도출해 민주주의를 부패시킨 이익집단이라고 한다. 그래서 하이에크는 헌법을 개정해 이익집단의 정치적 영향력을 차단할 수 있는 헌법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올슨의 사상은 수많은 논점들을 촉발해 정치학과 사회학 그리고 공공선택론의 연구 분야를 확대했고 이로써 경제학을 넘어 사회과학 전반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그의 사상은 하나의 학문적 성장산업이 됐다는 사실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12개국 언어로 번역된 그의 저서《국가의 흥망성쇠》는 경제사학계를 휩쓸었고 또 국가정책에 관한 최우수 저서로 미국 정치학회의 유명한 캠머러 상을 받았다. 민경국 교수 출처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3032978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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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15 한국경제신문 기업가정신 이론의 개척자 이스라엘 커즈너 기업가정신 이론을 개발해 자유주의 경제학을 가장 훌륭하게 발전시킨 인물로 평가받는 이스라엘 커즈너(Israel M. Kirzner)는 유태계 가정에서 태어나 남아프리카와 영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해 브루클린대를 졸업한 뒤 은행가가 되겠다는 생각에 뉴욕대 석사과정에 진학했다. 커즈너는 미제스의 경제이론 강의에 등록했다. 당시 미제스는 하이에크와 함께 오스트리아학파를 이끄는 핵심 인물이었다. 강의 첫날 “시장은 과정이다”라는 미제스 말 한마디가 젊은 커즈너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도대체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커즈너는 그 말을 들은 후, 평생 은사가 될 미제스와 자주 만나면서 그의 심오한 경제사상에 빠져들었다. 은행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접고 미제스의 지도로 박사과정을 거치면서 학문의 길로 들어섰다. 커즈너의 머릿속에 각인된 것은 ‘기업가정신’이라는 매력적인 키워드였다. 그는 기업가정신론을 제대로만 개발하면 ‘왜 시장은 과정인가’라는 물음도 풀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시장현상에 대한 새로운 이해도 가능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그래서 그는 평생 동안 기업가정신론을 개발, 자유시장의 매력적인 비전을 제시했다. 기업가정신에 대한 커즈너의 핵심 사상은 기업가의 상상력과 창조성에서 나오는 ‘기민성’이다. 이는 불확실한 세상에서 새로운 이윤 기회를 포착하는 프로정신을 뜻한다. 새로운 상품과 새로운 생산 방법 등을 창출하는 혁신도 그 같은 기업가정신의 산물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런 정신이 작동할 수 있는 경제적 환경이다. 완전한 지식을 가진 인간들의 확실한 세계를 표현하는 ‘균형’에서는 새로운 이윤기회도, 혁신도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커즈너는 기업가정신이 생명력을 갖는 세계는 사람들이 모르는 것이 많은, 그래서 불확실한 경제적 우주라고 주장한다. 그런 세계에서만이 불완전한 지식 때문에 충족되지 못한 소비자의 수요가 항상 있게 마련이고 알려져 있지 않은 이윤기회와 혁신거리가 계속 생겨난다는 이유에서다. 커즈너의 이 같은 사상에서 우리는 기업가의 독특한 사회적 역할을 볼 수 있다. 긴급한 수요자의 욕구를 찾아내고 이를 효과적으로 충족시킬 새로운 방법을 발견하는 것, 다시 말해 시장의 불균형을 균형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는 ‘창조적 건설’이다. 그러나 커즈너의 그런 생각은 기업가를 균형을 파괴하는 사람으로 취급하는, 그래서 ‘창조적 파괴’라고 말하는 슘페터와 다르다. 커즈너는 이윤기회도 없는 균형에서는 기업가가 나올 수 없다는 이유로 슘페터의 주장을 수용하지 않는다. 자동차의 도입이 마차산업을 파괴한 것이 아니라 폐물이 된 마차산업에 지나치게 많은 자원이 배분된 시점, 즉 불균형인 때에 자동차가 도입되었다는 것이 커즈너의 해석이다. 기업가 이윤에 대한 그의 도덕적 정당성도 눈길을 끈다. 이윤은 위험부담에 대한 대가라는 주장을 부인한다. 위험은 생산과정의 일상적인 비용, 그 이상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이윤을 불확실성에 대한 대가로 이해하는 것도 적합하지 않다. 그 대신에 그는 발견자(창조자)가 소유자여야 한다는 유명한 ‘발견의 소유자격론’을 개발했다. 이에 따르면 이윤은 발견의 대가이다. 커즈너는 기업가정신의 이해 없이는 경제발전도 파악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성장과 일자리는 혁신을 위한 민간 부문의 숱한 시행과 착오의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아이패드, 인터넷 등의 발견은 모두 시장의 그 같은 과정의 결과다. 주목할 것은 혁신의 원천이다. 어느 한 기업가의 혁신은 다른 가업가의 행동에서 나온다. 고속도로, 가솔린, 수리시설 등의 시장이 없었으면 헨리 포드의 자동차 대량생산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고든 무어가 마이크로프로세서를 고안함으로써 스티브 잡스는 개인용 컴퓨터를 조립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이 기업가정신은 더 많은 기업가정신을 가능하게 하는 환경을 조성한다. 그래서 성장은 자기증폭의 과정이라는 것이 커즈너의 설명이다. 기업가정신과 경제성장을 서로 연결시키는 것이 이윤기회의 발견이라면, 기업가의 이윤이 높다는 것은 곧 기업가가 그만큼 경제성장에 기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업가의 기민성은 끝없고, 성장의 잠재력도 한이 없다. 그래서 성장의 한계라는 말은 옳지 않다는 커즈너의 주장도 매력적이다. 기업가정신의 제도적 서식지는 정치적 자유와 민주화가 아니라 경제자유라는 커즈너의 인식도 관심 대상이다. 조세, 정부규제, 재분배를 통한 정부 개입은 기업가정신을 갉아먹고 기업가적 발견을 위축시킨다고 경고한다. 이와 같이 커즈너는 경제학계가 외면하던 기업가정신 이론을 부활시켜 새로운 모양으로 개발했다. 더구나 그는 기업가 사상을 통해 비정통 경제학으로 취급받던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도 부활시켜 자유시장경제의 세계화에도 기여했다. 그를 기업가정신 이론의 개척자라고 부르는 이유다. ------------------------------------------------------------------------------------ 마르크스 착취이론 오류 밝혀 커즈너 사상의 힘 이스라엘 커즈너는 지식의 주관성과 제한성, 그리고 지식의 오류 가능성이라는 오스트리아학파의 기본적인 철학에서 기업가정신 이론을 도출해 시장과정론과 분배정의, 자유, 성장론을 체계화하고 있다. 그런데 시장경제의 본질이 기업가적 과정임에도 정통경제학에는 기업가가 빠져 있다. 주어진 여건에서 효용 극대화를 추구하는 인간을 전제하고 균형이론에 의존하는 스티글러, 베커 등 시카고학파의 경제학은 시장분석에서 기업가를 퇴출시키는 치명적인 우를 범했다는 것이 커즈너의 설명이다. 완전경쟁 모델에 대한 불만에서 독점, 과점, 독점적 경쟁 등이 고안됐지만 이것도 기업가정신을 배제했고 그래서 ‘시장과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커즈너의 위대한 공로는 경제학에서 무시당한 기업가정신을 찾아 이를 부활시켰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의 이론은 시장과정의 궁극적인 지향점을 균형이라고 전제함으로써 시장경제를 미래에 대해 폐쇄된 시스템으로 취급하고 말았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럼에도 커즈너는 기존의 이론들이 범한 오류를 극복하고 있다. 미제스와 하이에크, 그리고 뷰캐넌의 사상은 이윤의 존재를 도덕적으로 정당화하는 독립적인 원천이 없다. 그들의 분배사상에는 도덕적 공백이 있다는 뜻이다. 이를 메운 것이 발견자가 소유해야 한다는 커즈너의 분배정의다. 노동가치론에 따라, 이윤의 존재를 부정하는 마르크스의 착취이론을 명쾌하게 부정한 것도 커즈너가 개발한 발견의 소유자격론이다. 특정한 재화의 생산이 장차 이익을 가져오리라는 기업가적 발견과 비전이 없으면 노동의 투입과 함께 그 재화의 생산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생산된 재화는 기업가에 속하고 그 재화에서 계약 노임을 뺀 이윤은 당연히 생산의 발견자인 기업가에게 속한다. 그래서 기업가 이윤은 착취의 결과가 아니라는 것이 커즈너의 설명이다. 경제적 번영을 위한 기업가정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커즈너의 경제사상은 학계는 물론 정치권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창업의 수, 시장규제 등으로 구성된 기업가정신 지수를 연구해 발표하는 국제적 사례가 21세기 들어와 급진적으로 증가한 까닭도 그 같은 중요성을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커즈너는 2006년 스웨덴 정부가 수여하는 국제기업가정신 연구상을 받기도 했다. 민경국 교수 출처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3031559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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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05 한국경제신문 " 최소국가론의 창시자 로버트 노직 " 20세기는 정부가 재분배, 고용, 성장 등 국가목적을 위해 자의적으로 시장에 개입하던 시대였다. 지식인들은 ‘정부 간섭’ 문제에 대해 철학적 차원에서 근본적인 해법을 찾기보다는 경제적 차원에서만 다루거나 공룡과 같은 거대정부를 정당화하는 데 주력했다. 이런 가운데 정부 개입의 정당성을 근원적으로 의심한 인물이 미국의 정치철학자 겸 정치경제학자인 로버트 노직(Robert Nozick)이다. 러시아에서 이주한 유태계 사업가 아들로 태어난 그는 ‘최소국가론’을 제시, 잃어버린 개인 권리를 되찾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최소국가란 폭력과 사기, 기만으로부터 시민들을 보호하고 계약을 집행하는 과제만을 수행하는 자유방임 국가를 말한다. 이런 국가만이 도덕적으로 정당하다는 게 노직의 생각이다. 노직은 청년 시절 사회주의 학생단체를 결성하고 그 활동에 적극 가담한 사회주의자였다. 자유주의로 전향하게 된 계기는 친구와의 이념적 논쟁이었다. 자유주의에 심취했던 그 친구는 토론에서 항상 미제스와 하이에크를 거론하면서 논리를 전개했다. 독서광이었던 노직이 그 석학들의 문헌들을 지나칠 수 없었다. 이들 서적을 탐독하는 사이 어느 덧 학문적으로 성장해 자유주의 철학자로서 하버드대 교수까지 되었다. 노직의 자유주의 핵심은 권리이론이다. 이 이론은 크게 3개 부문으로 구성돼 있다. 첫째는 인간은 목적 그 자체이지 수단이 아니라는 의미의 칸트적 존엄이다. 투자할 사업 분야를 선택하거나 삶의 목적을 설정하고 꾸려나갈 자유에 대한 개인적 권리는 그런 존엄에서 나온다는 게 노직의 주장이다. 권리이론의 두 번째 요소는 자기 소유권이다. 누구나 자신이 지닌 능력과 재주, 노동 등 자연적 자산에 대한 권리를 갖고 있다.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한 그런 자산을 자유롭게 사용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 세 번째가 사유재산권과 소득 및 재산에 대한 권리이다. 이런 권리는 개인이 자신의 자산을 자유롭게 사용할 권리에서 나온다. 사유재산권이 없으면 개인의 생명과 자유에 대한 권리는 큰 의미가 없기 때문에 재산권은 자기소유의 권리와 자유권만큼 절대적이라는 게 노직의 입장이다. 자유와 생명, 사유재산에 대한 권리는 그래서 자유주의의 삼위일체다. 흔히 사유재산제도와 자유경제는 경제적 번영을 가져다주는 핵심 요소이기에 소중하다고 일컬어진다. 관료의 고질적인 비효율, 그리고 빈곤과 실업, 환경오염과 같은 특정 문제 해결에서 정부의 빈약한 성과 때문에 국가 과제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도 이어진다. 노직은 자유경제의 중요성을 권리이론에 입각해 보다 근원적인 옹호논리를 편다. 시장경제와 작은 정부가 소중한 것은 효율성 때문이라기보다는 그것이 자유, 재산, 생명에 대한 개인의 권리를 진지하게 존중하는 체제이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노직이 조세부담을 늘리는 것에 반대하는 것도 경제활동 의욕의 위축 등 경제적 이유가 아니라 국가목적을 위해 억지로 부역하는 강제노동과 같고 그래서 자기소유의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한다는 이유에서다. 현대 복지국가가 부도덕한 것도 비효율적이고 낭비적이기 때문만이 아니다. 시민들을 그 같은 국가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취급, 국가의 노예로 만들기 때문이라는 것이 노직의 반대 논리다. 노직에게 도덕적으로 정당한 국가는 개인의 생명과 자유, 재산을 지키는 야경국가뿐이다. 그런 과제를 넘어서 교육, 사회보험, 복지 등 현대 정부가 수행하는 과제는 시민들의 자유권과 재산권의 침해만을 초래하기에 부도덕하고 그래서 교육과 사회보험은 자유 시장에, 복지는 종교자선단체에 맡기는 게 타당하다고 주장한다. 최소국가이념에 대한 비판자들은 분배정의를 위한 정부의 과제가 너무 적다고 불만이다. 그러나 시장에서 자생적으로 형성되는 소득과 재산의 분배를 정의롭다거나 정의롭지 못하다고 따지는 것은 옳지 않다고 노직은 주장한다. 시장에는 분배하는 사령탑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사회정의의 명분으로 시장의 분배 결과를 인위적으로 시정한다면 이는 개인의 권리들에 대한 심각한 침해를 야기한다는 노직의 주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소국가에 대한 노직의 비전도 흥미롭다. 자유주의라고 해서 오로지 자본주의의 도덕적 품성으로만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로직은 설명한다. 사회주의나 평등원칙에 따라서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자유로이 공동체를 구성해 그들끼리 소득을 재분배할 수 있다. 자선단체 같은 집단을 결성, 이타적인 욕구도 충족할 수 있다. 그래서 최소국가는 경제적 번영은 물론이요, 다양한 가치도 마찰 없이 추구할 수 있기에 사회적 평화도 가능하다는 것이 노직의 주장이다. 그러나 빈곤층 문제를 교회나 자선단체에만 의존해 해결하기 어렵다는 비판도 있다. 자유경쟁을 확보 유지하기 위해서는 보호국가적 과제만으로는 부족하고 별도의 법과 제도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노직의 자유주의 사상은 많은 쟁점을 남겨놓기는 했지만 권리이론을 개발하고 최소국가론을 개척, 간섭주의의 근본적인 문제를 파헤치고 다양한 가치를 지닌 인간들이 어떻게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 롤스와 세기의 대결… 레이거노믹스에 영향 노직 사상의 힘 철학으로 훈련받은 노직은 하이에크로부터 매우 큰 영향을 받았다. 그들은 자유사회를 위해 똑같은 목소리를 내지만 구체적인 사상적 내용에서는 차이가 많다 노직이 정립한 사상은 ‘권리이론’에 입각한 ‘합리주의적 자유주의’이다. 이는 자생적으로 생겨나는 관습에 대한 경외감에서 이론을 전개하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으로 계획한 선험적인 사회질서로 현실 세계를 개혁하려는 것이다. 이는 존 로크의 전통이다. ‘자유이론’에서 출발하는 하이에크는 그런 전통을 수용할 수 없다. 인간의 지적 능력은 극도로 제한돼 있기에 사회를 계획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유익한 관행과 제도의 등장에 대한 인식에서 자생적 진화에 의존한다. 그래서 그의 이념은 ‘진화론적 자유주의’이다. 이는 애덤 스미스 전통이다. 노직은 하버드대 동료 교수였던 롤스와의 ‘세기적인 대결’로 유명하다. 주지하다시피, 롤스는 사회민주주의 철학자였다. 개인이 몸에 지닌 모든 자연적 자원은 개인의 소유일 수 없으니까 공공자산이어야 하고 이게 ‘없는 자’를 위한 것이라는 논리로 복지국가 모델의 이론적 기초를 제공했던 인물이다. ‘가진 자’의 논리라는 비판에도 노직은 엄정한 논리로 롤스의 그런 사상을 거부했다. 개인의 능력, 재주가 모든 사람의 공동소유라면 개인이라는 존재는 의미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노직은 미제스, 하이에크와 함께 20세기에 가장 큰 목소리로 인류의 번영을 위해 자유, 사유재산, 제한된 정부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말해주었다. 정치적으로나 학문적으로 좌경화된 분위기를 급진적으로 변화시킨 것이 개인적 권리의 중요성을 갈파한 노직의 사상이다. 자유주의가 전대미문의 번영을 가져온 대처리즘과 레이거노믹스로 꽃을 피우게 된 데에도 노직의 영향을 빼놓을 수 없다는 게 일반적 평가다. 민경국 교수 출처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304058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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